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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죽음을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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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순진1 작성일 24-03-18 19:23 조회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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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서 남성 대비 여성의 자해·자살 시도율은 2.7배나 높다. 청년 여성들의 ‘자살 생각’은 사회적 ‘현상’이다. 

이소진 작가는 1년 이상 자살 생각에 시달려온 청년 여성 19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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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사회연구자 이소진 작가는 이런 이들을 총 19명 만났다. 모두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자살 생각에 시달려온 1990년대생 청년 여성이었다. 연구 참가자를 모집할 때 나이만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비중산층이라는 계급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정리하고 엮어 지난해 12월,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오월의봄)을 출간했다.

연구의 시작은 ‘조용한 학살’로 불린 20대 여성의 높은 자살률 통계였다. 팬데믹으로 비숙련 노동자들의 고용이 위태로워지고 사회 구성원들의 고립이 조명되던 시기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망원인 통계’가 주목받았다. 2018년 대비 2019년 20대 여성 자살률이 25.5%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20대 남성 자살률은 전년 대비 0.7% 증가했다. 해당 수치는 언론과 학계에서 반짝 관심을 받았지만 이들의 ‘죽음 충동’에 대한 담론은 지속되지 못했다.

자살 사망자 절대 수만 비교하면 남성이 여성의 2.3배에 이르기 때문에(2022년, 통계청) 여성 자살률 문제의 심각성은 흔히 가려져왔다. 하지만 청년 여성들의 위태로운 현재를 보여주는 수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1월3일, 국립중앙의료원과 중앙응급의료센터가 발표한 ‘2021-2022 응급실 자해·자살 시도자 내원 현황’에 따르면, 남성은 80대 이상에서 인구 10만명당 125.9건, 20대에서 105.4건 순으로 자해·자살을 많이 시도했다. 반면 여성은 20대가 284.8건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10대가 257.8건이었다. 20대 남녀의 수치만 비교할 경우 남성 대비 여성의 자해·자살 시도율은 2.7배나 높다. 청년 여성들의 ‘자살 생각’이 코로나 이후의 일시적인 ‘증상’이 아닌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청년 여성’이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 여겨온 것은 아니다. 지금의 어머니 세대(1950년대생)가 20대였을 당시와 비교하면 1980년대생은 5배, 1990년대생은 7배가량 자살률이 늘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사회’에 청년 여성의 증발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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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여성을 위협하는 생애 위험들

‘가족 위험’은 가족 내 가부장적 관계 혹은 일자리나 결혼 여부 등을 기준으로 자녀의 성과를 비난하는 가족(부모)의 통제가 생애 전반에 걸쳐 따라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노력 부족’이라고 힐난하는 언어적 폭력과 물리적 폭력이 가정 안에 만연할 때 청년 여성들은 자책과 모멸을 학습하며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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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만 당신 몫이다"

물론 가부장제는 남성(아들)에게도 폭력이 된다. 그런데 왜 여성들에게 더 치명적일까?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 안에서 남성보다 더 쉽게 신체적·언어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이소진 작가는 여성들이 모멸과 비난을 겪어도 쉽게 분위기를 깨뜨리지 못하도록 ‘무해하게’ 길러진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화를 내거나 문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신이 분위기를 파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사회화되곤 한다. 나를 대하는 태도나 말이 불편해도 내가 침묵함으로써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 말라는 부정의 의사표현을 한다 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며 분위기를 회복시키려 노력한다.”

이소진 작가에 따르면, 많은 여성들이 ‘가족의 행복’에 대해서 떠올릴 때 그것을 완전한 행복감으로 느끼지 못한다. 가족의 행복은 여성이 크고 작은 희생을 감내해야만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머니가 수행해온 ‘헌신’은 자연스럽게 딸에게 이어져 내려온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가부장제의 동조자로 자신이 짊어져왔던 짐을 딸과 나누려 하고, 동시에 정서적 지지라는 위로를 딸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연민의 대상인 어머니는 청년 여성들의 자살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동시에 자살 생각을 유발하는 증폭제다. 탈주할 수 없는 가족관계는 성인이 된 후에도 이들의 삶에 지속적인 위험이 된다.

여성들은 이런 가족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꿈꾸며 노동시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다양한 성차별을 겪으며 홀로서기가 유예되거나 불안정한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 은주(가명)의 상사는 은주가 가르친 남성 후배와 은주의 성과 평가를 교체해 남성 노동자에게 더 높은 연봉을 책정했다. 은주가 퇴사를 각오하고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에서는 부서 사람들 연봉에서 갹출해 은주에게 주는 식으로 ‘땜빵’을 했다.

문제는 이런 ‘노동 위험’이 과거보다 현재의 청년 여성에게 더 큰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처한 새로운 현실, 바로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청년 여성들은 결혼·출산이 아닌 독립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생애 기획의 중심에 둔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저임금을 받고 차별을 받아도 ‘결혼’을 통해 남성 생계부양자의 혜택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더 이상 이런 문법이 유효하지 않게 됐지만, 남성 중심적인 노동시장과 가족 중심의 복지시스템은 그대로다.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며 혼자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청년 여성의 생애 전반으로 확산된다.”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날것 그대로인 비표준어와 말줄임표를 통해 표기된다. 이소진 작가는 이들 청년 여성의 말이 매끄러운 드라마 대사처럼 읽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머뭇거림과 주저함, 고통을 최대한 구어체로 살리고자 했다. “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참여자들이 내게 말을 전하던 그 순간의 감정과 결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모두 내 경험 안에 있었다”라고 말하며 연구 참여자인 ‘자살 생각자’들을 ‘우리’라고 호명한다. 여전히 자살을 생각하지만 동시에 부단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 여성들이 ‘내 탓’이라는 자책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그는 덧붙였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분위기를 파괴하고 주어진 의무를 던져버릴 수 있다. 당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그 모든 것 중에서 아주 조금만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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